와인 재배 이동경로
사람들이 언제부터 와인을 마시기 시작했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다만 구약 성경에서 노아가 대홍수 후에 아라라트산에 정착하여 첫 농사를 지은 다음 포도주를 담가 마시고 대취하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그 이전부터 이미 포도재배와 와인 제조가 보편화되어 있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한편 그리스 신화에서는 제우스의 아들이 바커스가 포도 재배와 포도주 제조법을 지중해 연안으로 보급시킨 것으로 나옵니다.
와인이 본격적으로 전파된 것은 로마시대 때 일입니다. 와인의 매료된 로마의 지배자들은 프랑스, 스페인 등의 식민지에 포도원을 조성하여 좋은 와인을 확보하려고 하였습니다. 그 덕분에 프랑스의 보르도, 부르고뉴 등지에 있는 특급 포도원들은 로마시대 이래 2000년 동안 고급 와인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와인은 기독교 전파와 함께 그 뿌리를 더욱 깊이 내리게 되는데, 이것은 기독교 종교의식에서 와인을 필수품으로 여겨 온 것과 관련이 있을 것입니다. 성경에서 와인을 많이 언급하고 있고 특히 예수는 최후의 만찬에서 제자들과 더불어 빵과 와인을 나누어 먹으며 "이 빵은 나의 살이요, 이 와인은 나의 피니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니라." 라고 말합니다. 그 때문에 와인은 성스러운 신의 선물로 간주되어 미사주로 사용되었습니다. 중세에는 수도원이 와인 생산을 담당했으며 와인 제조 방법 또한 수도원에서 발전되었습니다. 16세기에서 20세기 초반까지는 유럽 각국의 식민지 확산과 더불어 포도의 재배와 와인 제조 기술이 전 세계로 전파되었습니다.
고대 와인
고대 무덤에서 포도와 와인에 대한 부장품이 발견되는데, 와인은 장례에서도 많이 쓰였던 거 같습니다. 또한 사회 지도층 사이에서 널리 퍼졌던 거 같습니다. 대중은 발효된 대추 야자 주스나 다른 유사 맥주 음료를 마셨습니다. 이집트인들은 그들의 무덤에 벽화를 남겼고, 이로부터 우리는 그들의 포도 재배 및 와인 양조 기술이 본질적으로 근대까지 사용되던 기술과 같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스인들은 아마도 바빌로니아에서 와인 제조법을 배웠을 것입니다. 그리스 사람들의 기록에 의하면 그들은 오래되고 묽은 와인을 좋아하고, 이를 저장하기 위해서 암포라만 사용했기 때문에 오늘날의 마데이라 와인(포르투갈 특산 와인)과 비슷할 것으로 추정됩니다. 고대 지중해 연안 지역에서 와인은 가격이 높고 수요가 꾸준했기 때문에 와인은 고소득 농산 가공품이었습니다. 로마인들은 술을 저장하기 위해 나무통을 사용했습니다. 유리병도 있었지만 밀폐 방법이 없어 18세기 후반 코르크 마개가 발명될 때까지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로마인들은 암포라보다 보다 효율적인 나무통에서 와인을 숙성시켰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와인은 묵직하고 달아 물을 타서 마셔야 했습니다. 이렇게 나무통에 와인을 저장하던 모습은 오늘날 이탈리아의 농촌에서 볼 수 있습니다.
중세 와인
기독교를 국교로 선포한 로마 제국의 콘스탄티누스 황제 이후 각 지역에서는 수도원과 포도원이 지속적으로 늘어났는데 기독교의 종교의식에서 와인이 필수품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수도승들은 다양한 포도를 심고 여러 가지 실험의 결과로 유럽 각 지역의 기후와 풍토에 적합한 포도 품종이 보급되었습니다.
정치는 와인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영국은 보르도의 와인을 13세기 초에 발견했습니다. 이는 1703년 메수엔 조약(포르투갈이 영국의 직물을 수입하는 대신 영국은 포르투갈의 포도주를 수입할 때 프랑스 포도주 보다 관세를 적게 낸다는 조약)으로 포르투갈 와인의 가격 경쟁력이 생겨 500년간 영국의 가장 인기 있는 와인이 되었습니다. 포트와인은 정치적 편의에 의해 유명해진 포르투갈의 드라이 레드 와인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영국에서 포르투갈 와인은 포르투갈 라벨을 붙이 불법 밀수 보르도 와인에 밀려 처음에 별로 인기가 없었습니다. 1678년 두 영국의 와인상은 두오르 강 근처 수도원에서 달콤한 와인을 마셨고 그 와인에 흥미를 보였다. 이 와인은 스페인식(셰리)으로 발효를 마치기 전에 브랜디를 넣어 당도를 높였다고 했고 상인들은 그 와인을 가져와 오래 보존하기 위해 더 많은 브랜디를 넣었습니다. 이 와인은 큰 성공을 불렀고 두오르 강의 강화 와인 제조법이 탄생했습니다.
독일의 와인은 리슬링을 사용했음에도 오늘날의 당도로 만들어지지는 않았습니다. 1775년 슐로스 요하네스버그의 한 수도원에서 공식 수확 지시 문서를 도둑질당한 전령자의 실수로 수확을 늦게 했는데 당도가 높은 맛 좋은 와인이 탄생하였고 독일의 와인 역사를 바꾸게 됩니다. 영국이 프랑스 와인 수입 금지령을 해제하자 보르도 와인은 인기를 되찾았습니다. 영국 사람들은 이미 포르투갈의 강화 와인에 익숙해져 고급스러운 프랑스 와인에 걸맞은 식단을 갖지 못했습니다. 19세기 중반에야 영국 사람들은 순수한 보르도 와인을 즐기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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