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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로마제국의 흥망성쇠에 따른 와인산업

by ericchoi 2022. 9.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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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의 전성기 로마시대

와인 책을 읽다 보면 모든 포도밭이 로마시대부터 있었다고 자랑합니다. 서양 사람들에게 로마제국은 마음의 고향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로마인들은 도로와 다리를 만들었고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최고의 국가였습니다. 이들은 와인에 있어서도 포도 품종의 분류, 재배방법, 담는 방법에 이르기까지 획기적인 발전을 이룩하여 와인의 질을 향상하고 나무통을 사용하여 와인을 보관하고 운반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와인 양조에서 획기적인 발전은 바로 로마시대에 사용한 오크통입니다. 이 오크통은 원래 갈리아 지방의 켈트인 맥주 저장에 이용했던 것으로 시저의 갈리아 정복으로 도입되었습니다. 그전에 사용된 항아리인 '암포라(Amphora)'에 비하면 오크통은 취급하기도 편리할 뿐 아니라 거의 완벽하게 내용물을 밀폐시킬 수 있었고 이로 인해 와인의 품질에 큰 공헌을 하게 됩니다.

 

로마인은 또 착즙기를 발명했습니다. 이 착즙기는 통 위에 추를 올리고 이것을 끈으로 위아래로 움직이게 만든 것으로 9세기에 나오는 지레를 이용한 착즙기의 원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때부터 와인은 로마의 군수품과 중요한 무역상품으로 유럽 전역에 퍼지기 시작했고 당시 식민지이던 프랑스, 스페인, 독일 남부까지 포도재배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1세기에 태어난 라틴의 농경학자 '콜루멜라(Columella)'가 쓴 책에는 오늘날에도 통용되는 경작, 식목, 시비, 삽목에 의한 번식, 접목, 휘묻이, 비료 등 포도재배와 와인 양조 방법이 상세하게 적혀 있습니다.

 

그리스 시대부터 와인은 세련되고 발달된 문명을 상징하는 음료였습니다. 와인 마시는 절차를 만들고 와인 마시는데 필요한 비품을 준비하여 와인 마시는 사람들의 세련미를 강조하였습니다. 로마는 그리스를 포함한 지중해를 군사적으로는 장악했지만 로마는 그리스 문명을 숭상하여 그리스 신화를 도입하고 그리스 글자를 변형하여 로마문자를 만들고 그리스의 건축물, 그리스의 법률 등 모든 것을 그대로 모방하였습니다. 로마의 와인 역시 그리스의 세련된 문화를 받아들이는 상징이었습니다. 귀족들은 포도밭을 가꾸고 와인을 만들어 그리스 양식의 집과 정원에서 와인 파티를 여는 것을 큰 자랑으로 생각했습니다. 로마의 영토가 확장되면서 와인 마시는 관습이 널리 전달되어 영국에서는 맥주를 제치고 와인을 마시기 시작하였고 북쪽의 게르만족 역시 맥주를 와인으로 바꾸면서 기독교를 받아들이게 됩니다. 즉 와인을 마시는 것은 개종의 상징이었습니다.

로마제국의 멸망은 와인산업의 몰락

로마제국의 멸망으로 이슬람 세력이 지중해 연안의 북아프리카, 이베리아 반도, 프랑스 남서부 지방까지 세력을 확장하면서, 와인산업도 사양길로 접어들게 됩니다. 포도밭이 황폐화되고 와인 거래도 감소되어 그야말로 중세 암흑시대로 들어간 것입니다. 로마라는 큰 와인시장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에 와인의 침체기로 볼 수도 있지만 로마를 대신하여 북유럽의 새로운 주인이 된 게르만족의 와인에 대한 집착은 대단했습니다. 이들은 맥주를 대신하여 와인을 마시기 시작하였고 이를 세련된 문화로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유럽의 남부를 지배한 이슬람교도들도 포도를 좋아하고 간혹 와인을 즐기기도 해서 소아시아 포도 품종을 새로 소개하기도 했지만 전반적으로 포도밭이 감소하면서 와인 거래는 주춤하기 시작합니다.

수도원과 와인

로마제국의 멸망과 이슬람의 유럽 진출로 와인산업이 침체기에 이르렀지만 교회 의식에 필요한 와인은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십자군 원정과 수도원의 활발한 움직임으로 와인산업이 다시 빛을 보게 됩니다. 십자군은 중동지방에서 포도나무를 들여와 오늘날 유럽 포도가 주종을 이루게 하였고 수도승들은 풍부한 노동력과 안정된 조직력을 바탕으로 포도를 재배하고 와인을 만들었습니다.

 

와인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수도원의 와인 양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중세시대 몰락하는 와인산업을 유지하고 발전시킨 수도원은 와인뿐 아니라 과학과 신학, 농업까지 획기적인 발전을 이루는 데 큰 공을 세웠다고 볼 수 있습니다. 수도승들은 자급자족으로 수도원에서 사용하는 물품을 조달해야 했고 성찬식에 꼭 필요한 와인은 특별한 노력의 산물이었습니다. 당시 유럽에는 황무지가 많았고 수도원은 세금이 면제되었기 때문에 이들이 만든 와인은 교회 의식에 필요한 수요를 충당하고 판매 수입원으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관리방법을 도입하여 근대 와인 제조의 기초를 확립하였고 로마제국 붕괴 이후 와인 수요를 지속적으로 늘린 것은 바로 수도원과 교회였습니다. 교회는 대규모의 포도밭을 소유했으며 와인의 생산과 소비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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