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 속 와인의 탄생
그리스 신화 속 디오니소스(Dionysos)는 풍작과 식물의 성장을 담당하는 자연신으로 특히 술과 황홀경을 대표하는 신입니다. 이 디오니소스에게 늘 따라다니는 것이 포도와 와인입니다. 디오니소스는 제우스(Zeus)와 카드모스(Kadmos)의 딸이지만 원래는 프리기아의 대지의 여신인 세멜레(Semele)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라 알려져 있습니다. 결혼의 신인 제우스의 아내 헤라(Hera)는 질투가 유독 심했습니다. 그녀는 유모로 변장하여 세멜레를 찾아가 "지금 당신이 만나는 남자의 신분을 한번 알라보라"고 부추깁니다. 세멜레는 그 말을 믿고 제우스에게 찾아가 신분을 확인합니다. 한편, 제우스는 세멜레에게 화가 미칠 것을 걱정하여 자신의 갑옷 중 가장 가벼운 것과 번개 중 가장 작은 것을 들고 신의 모습으로 신분을 밝히기 위해 그녀를 찾아갑니다. 그런데 인간인 세멜레는 신인 제우스의 힘을 견디지 못하고 그 작은 번개에 새까맣게 타 죽고 맙니다. 세멜레의 주검을 끌어안고 슬퍼하던 제우스는 그녀가 임신한 상태임을 알아차립니다. 그는 헤라가 알기 전에 재빨리 세멜레에게서 여섯 달 난 아이를 꺼내 자기의 허벅지 속에 넣습니다. 그렇게 해서 태어난 아들이 바로 디오니소스입니다. 깊은 산의 동굴에서 자라난 디오니소스는 열다섯 살이 되었을 때 포도를 재배하게 됩니다. 디오니소스는 어느 날 지하 동굴을 걷다가 무심결에 포도가 가득 담긴 함지박을 밝고 지나칩니다. 그 후 며칠 뒤 함지박에서 묘한 향기가 나는 것을 발견하고 그것을 마십니다. 그 맛이 참 싱그럽고 상큼했으며 기분도 좋아지는 것을 알게 됩니다. 디오니소스는 이후로 만나는 사람마다 포도 재배 방법과 포도주 만드는 방법을 전파합니다. 후세에 그 공로를 인정받아 여러 그림의 주인공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디오니소스가 만든 포도주를 즐겨 마시며 축제를 열게 되었는데 이 축제가 연극의 기원이 되었습니다.
디오니소스는 로마 신화에서 바쿠스로 이름이 바뀝니다. 바쿠스 역시 포도나무 재배 방법과 와인 양조를 알린 공로로 오랫동안 로마 문학가들에 의해 칭송을 받았습니다. 로마시대 때 강성했던 캄파니아(Campania) 지방에는 전해 내려오는 바쿠스의 일화가 있습니다. 바쿠스는 어느 날 인간의 모습으로 초라한 차림을 하고 길을 가다가 마시코(Massico) 산기슭에 살던 팔레르누스(Falernus)라는 한 늙은 농부와 만납니다. 농부는 수척해 보이는 바쿠스를 측은하게 여겨 그에게 꿀과 우유와 과일을 건네주었습니다. 농부의 환대에 감사한 바쿠스는 꿀을 와인으로 변화시켜 답례했습니다. 와인을 마신 농부는 곧 곯아떨어졌습니다. 그가 잠든 사이 바쿠스는 농부의 친절에 대한 답례로 마시코 산을 온통 포도나무 밭으로 변화시켜 놓았습니다. 이후로 마시코산 지역에서 나오는 와인은 캄파니아 지방의 최고 와인으로 명성을 날렸습니다. 하지만 로마제국의 쇠퇴와 함께 캄파니아 와인의 유명세도 몰락했습니다. 훗날 나폴리왕국이 번성했을 무렵인 18세기 말에 다시 캄파니아 와인은 인기를 얻게 됩니다. 오늘날 캄파니아 지방에서 나오는 팔레르노 델 마시코(Falerno del Massico)가 그 역사와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와인입니다.
서양 역사와 함께 성장하다
오루미예(Orumiyeh, 이란 북서부 끝에 있는 도시)는 서쪽으로 이라크와 터키와 인접한 곳에 있습니다. 북쪽으로는 아제르바이잔, 아르메니아 그리고 그루지야와도 가깝습니다. 이 오루미예에서 최초의 와인이 발견되었는데 이는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이 바로 포도의 한 종류인 비티스 비니페라(Vitis Vinifera)의 탄생지이기 때문입니다. 비티스 비니페라는 유라시안 포도의 학명으로서 현대 와인의 재료인 카베르네 소비뇽, 샤르도네 등의 원종을 이르는 말입니다. 또한 성경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가 발견되었다고 전해진 터키의 아라라트산(Mount Ararat)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습니다. 인류 최초의 문명인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발원한 곳, 최초의 와인이 발견된 곳, 노아의 방주가 표류한 곳, 비티스 비니페라가 탄생한 곳, 이 네 곳 모두가 서로 가까이 몰려 있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와인은 아시아에서 출발하였고 그 후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습니다. 특히 로마시대 때 포도나무 재배 방법이 유럽 전역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그리하여 오늘날 유럽이 와인 종주국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와인의 이러한 전파 경로는 성경의 전파 경로와 그대로 일치합니다. 기독교 문화가 중심이 되는 서양 문명의 역사는 그래서 와인의 역사와 같이합니다.
저장법의 발견으로 더 사랑받다
자연에서 얻는 모든 음식이 그러하듯 와인 역시 외부 환경에 의해 쉽사리 상하는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요즘이야 저장 방법이 다양하면서도 좋다지만 옛날의 와인은 지금의 와인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색이 연했고 구조 또한 약했습니다. 그래서 소비자들이 좋은 상태의 와인을 만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자연 발효주인 와인은 증류주인 코냑(Cognac)이나 위스키(Whiskey)에 비해 물성이 약합니다. 그래서 온도의 변화, 습도의 부족, 진동 등에 취약합니다. 온도가 너무 높거나 변화가 심하든지 습도가 부족하거나 진동이 많으면 와인은 성장이 비정상적으로 촉진되어 조숙해져 버립니다. 한마디로 상하는 것입니다. 김치를 항아리에 담고 땅속에 묻어야 맛있게 익는 것처럼 와인 역시 이상적인 저장 수단이 필요합니다. 와인을 보관하는 최적 온도는 13도 정도입니다. 하지만 10~18도 정도의 약간의 온도 차이는 괜찮으니 이 사이에서 저장하는게 좋습니다. 그리고 어두울수록 좋으므로 오크통을 저장하는 장소가 지하나 어두컴컴한 동굴이 많습니다. 습도를 조절하는 것도 매우 중요해 너무 많아도 그렇다고 너무 습기가 없어도 안 되니 정말 까다로운 음료입니다. 보관하는 병의 상태도 중요한데 라벨이 위로 올라오게 누운 채로 보관해야 라벨도 양호하고 와인도 상하지 않게 숙성시킬 수 있습니다. 요즘에는 좋은 셀러(Wine cellar)가 많아 가정에서도 와인 보관이 어렵지 않습니다. 저장 수단의 발전은 와인이 대중들과 언제든지 만날 수 있는 혁명을 일으켰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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