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계의 대부 로버트 파커(Robert Parker)
와인 시장은 단순히 수요와 공급의 균형에서 가격이 형성되는 시장이 아닙니다. 와인의 품질이라는 것이 너무나 주관적인 것이다 보니 가격이 뻥튀기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특히 로버트 파커(Rober Parker)와 같은 사람이 좋은 와인으로 평가하면 하루아침에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나쁜 와인으로 평하면 가격이 폭락하게 됩니다. 로버트 파커는 어떤 사람일까요? 로버트 파커는 평범한 미국의 청년이었고 여자 친구를 따라 교환 프로그램으로 파리에 머물던 중 와인에 대한 사랑에 눈을 뜨게 됩니다. 미국으로 돌아와 변호사 일을 하던 그는 처음에는 주변 사람들에게 돌릴 목적으로 와인 뉴스레터를 제작했습니다. 1970년대 후반의 미국 와인 시장은 아주 미미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와인을 달콤한 주스 정도로 생각했고 당시 미국에서 팔리던 버건디(Burgundy)나 키안티 같은 와인들은 품질이 아닌 유럽풍의 이름 덕에 인기가 있었으며 낮은 품질의 저가 와인들이 시장을 주로 점유하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와인의 난해한 어휘들과 전문가의 부재는 대중들로 하여금 와인을 더욱 멀리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로버트 파커는 어렵고 느낌도 잘 전달되지 않는 용어 대신에 상대적으로 쉽고 미국인들의 감정에 와닿는 용어들을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woody', 'fruity' 같은 단어가 그것들입니다. 또 하나의 혁명적인 발상은 와인에 점수를 매기기 시작한 것입니다. 복잡한 설명 대신에 98점, 90점 등과 같은 점수를 매김으로써 가격을 제외하고 대중이 쉽게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을 세운 것입니다.
로버트 파커의 와인 시장에 대한 영향력
로버트 파커의 영향력은 절대적입니다. 그의 영향력이 너무 크다 보니 파커가 좋아하는 것이 곧 좋은 와인의 기준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예를 들어 샤르도네의 경우 버터 향이나 부드러움이 좋은 와인의 기준이 되었고 따라서 사과산-유산 발효를 많이 하는 캘리포니아 샤르도네가 상대적으로 높이 평가받습니다. 또 유럽 와인 중에서 농도가 높고 타닌은 적으며 산도도 낮은 보르도 와인들이 높게 평가됩니다. 상대적으로 부르고뉴 와인이나 이탈리아의 와인들은 파커의 기준에서 낮게 평가되었고 이탈리아 와인 양조 회사는 이에 대해 불만이 커졌습니다. 원래 산조베제 품종으로 만들어지는 키안티 계열의 와인들은 이탈리아 음식과 더불어 먹도록 발전해 온 탓에 산도가 높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불평만으로 시장의 영향력을 이겨 낼 수는 없었습니다. 보르도 와인처럼 블렌딩 한 이탈리아 와인들이 시장에 진출하고 이들 중 일부는 '슈퍼 토스칸'이라는 이름으로 비싼 값에 팔리고 있는 것 또한 파커의 영향력과 무관하다고 볼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파커의 평가는 와인 한 병당 평균적으로 얼마만큼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것일까요? 경제학자들이 이에 대해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내놓았습니다. 보통 파커는 매년 봄에 새로 나온 보르도 와인의 가격이 결정되기 전에 시음하고 평가를 합니다. 그런데 2003년에는 봄에 평가서를 만들지 못하고 와인 가격이 매겨진 이후 평가를 발표했고 이를 비교하여 파커가 보르도 와인 가격에 미친 영향을 파악할 수 있었는데 결과적으로 파커의 평가 한 마디는 와인 한 병당 약 2.8유로의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분석 되었습니다. 얼마 안 되는 돈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 수치는 보르도 와인 전체 그리고 우리가 마시는 모든 와인에 미치는 엄청난 효과입니다. 또 다른 학자는 보르도 와인의 가격 변동을 오랫동안 관측한 결과 이 보르도 빈티지의 품질과 가격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와인이 생산된 해의 기후라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와인 맛에 대한 심리적인 연구
다양한 가격대의 오크 숙성의 화이트 와인을 시음하게 한 후 좋아하는 와인을 골라 보게 했습니다. 도매업자들은 화이트 와인의 품질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가격 요인은 무시하고 오크 향의 강도에 따라 판단했습니다. 이에 비해 소비자들은 가격을 중심으로 판단했고 오크 향의 유무는 크게 중요시하지 않았습니다. 즉 소비자들은 사실 어떤 것이 고급 화이트 와인인지 잘 모르고 그저 비싼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더 흥미로운 점은 도매업자들의 경우 소비자들에게 이러한 사실을 잘 설명해서 좋은 화이트 와인을 추천하면 소비자의 구매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될 거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소비자들은 여기에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고 주로 가격에 따라 구매 여부를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와인가게에서 와인을 많이 팔려면 맛이 좋다는 것을 강조하기보다는 가격이 얼마나 착한지를 강조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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